성안동
성안동은 순조 4년(1804)에 성인동리라 하던 마을인데 고종 31년(1894)에는 성동과 상리동으로 갈라져 있었던 동이다.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 때에 성동과 상안에 내상면 외약동 및 농소면 오정동, 길촌동의 각 일부씩을 합하여 성안리라 하였다. 성안이라함은 성동의 성(聖)과 상안의 安(안)을 서로 따서 성안이라 한 것이며 지금은 행정상으로 북정동에 합하였다.
새일내
- 새일내는 고종 31년(1894)에 상리라 하다가 1911년에는 상안이라 고친 마을이다. 상리라 함은 으뜸가는 윗마을이란 뜻이며 상안은 윗쪽의 편안한 마을이란 이름일 것이다. 새일내는 새내 또는 새나리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고자 한다. 새는 새 의 뜻을 가진 것인데 그 차자로는 새(沙,사)·새(新,신)·새(濊,예)·쇠(鐵,철) 등이 있으며 새 의 훈자로 새 (曉,효)·새 (赤,적)등이 있다. 「일」은 나리의 변한 말인 일(日)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나리는 사람이 사는 터전을 뜻하는 내(川,천)의 별칭이기 때문에 바다나 물가가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또 내는 내(川,천)·내(壤,양)로서 땅또는 터전을 말하는 것으로 일(日)과 중첩된 말이다. 인류가 처음에는 산에서 채집생활을 하며 살다가 냇가로 내려와서 살며 농경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내는 단순한 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착하여 사는 터전으로 해석되었다가 뒤에 이르러 내는 내(壤)의 개념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새일내는 沙日川(사일천)가 되는 것이다.
성동
- 성동은 새일내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순조 4년(1804)에는 농소면에 속한 마을로써 성인동리라 하였으나 1894년에는 성동이라 하다가 1911년부터 성동이라 고쳐 불렀다. 다만 성인이 살았으므로 성인동이라 하게 된 것이라 전해 올 뿐이다.
재정골
- 고극명이 세운 삼야정이 있었으므로 이곳을 재정골이라 한 것으로 보아진다.
거랑골
- 성동에서 동쪽으로 내려간 곳을 거랑골이라 한다. 시례천이 흐르는 골짜기이다.
시리내
- 성동과 가대의 사이에 있는 소(沼)이다. 아마 시루 같은 지형의 소라 하여 시리내라 하는 것 같다. 시리는 시루의 방언. 새는 소에의 준말인 듯하며 여기에서 성동으로 넘어오는 재를 시리재라 한다.
약사
- 조그만 내를 사이에 두고 약사동의 내약과 갈라진 한 반을 역시 약사라 한다. 약사는 약물이 나던 약수골이다.
바람바우
- 성동의 서쪽에 있다. 바위가 많은 곳인데다가 산말랑이 되어서 또한 바람도 많으므로 바람바우라 한다. 또 바람바우를 일명 된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래골 쪽으로 넘어가는 된박재에서 유래된 말이다. 된박은 급경사 진 곳이며「이」는 접미사이다.
장군바우
- 새일내의 서쪽에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말을 타고가는 장군의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으므로 장군바우 또는 장암 이라 부른다.
황바우
- 이 마을은 새일내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성안에서는 맨 먼저 생긴 마을이라 한다.
칡바우
- 새일내와 황바우 간에 있는 마을이며 바위 위에 칡꽃이 피었다 하여 칡바우라 부르며 또 일곱바위가 있다 하여 칠바우라 하기도 한다.
황새골
- 새일내의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곳에 환생사가 있으며 춘추로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손골
- 새일내의 남쪽 북정과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로서 좁다란 골짜기 라는 말이다.
함월산
- 울산의 주산, 주산은 고을의 북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월성군의 기림사가 있는 산은 신라의 남악이라한 함월산인데 불가에서 이 산이 뻗어내린 한 지맥이라하여 함월산이라 하였다.
당고개와 시농골
숯못안
- 칠바우에 속한 마을이며 서편에 숯못이 있으므로 숯못안이라 하며 숯못에는 동방삭이 잡혔다는 전설이 있다.
절넘에
- 성안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의 마을 이름을 절넘에라 한다. 이는 백양사 넘에 있는 마을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담탕과 군깃골
- 새일내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곳을 담텅이라 하며 여기에는 논과 밭이 많다. 그 뜻은 알 수 없으나 텅은 터미, 퇴미의 변한 말일지 모른다. 또 이 담텅에서 동쪽으로 발달한 골짜기를 군기골이라 하여 옛날 군기를 감추었던 곳이라 하기도 한다. 혹시 굼기에서 유래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널바우
- 옛날 암금할망구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바위에서 해산하였다는 전설을 가진 바위이다. 가위터와 해산한 터가 있었다고 하는 바위이나 변전소 부지에 들어가서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다. 바위와 아기의 해산설은 다른 바위에서도 볼 수 있는 형상이나 큰 바위에 명을 빌고 생남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어서 이러한 전설을 낳고 있다. 널바우는 넓바위의 뜻이었다.
예수바우
- 칠암과 약사 사이의 골짜기인데 옛날 여우의 굴이 있는 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 골짜기를 예수바우라 한다.
참새미
- 황바우에서 성동 쪽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골짜기이다. 찬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옹달샘이 있으므로 이곳을 참새미라 한다. 옛날 어느 7년, 대한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농바우
- 장군바우의 동남쪽에 있는 농(籠)덩이 같이 생긴 바위이다. 일제 때 어느 석공이 이 바위를 깨트리니 갑작스레 청천벽력이 우르르하고 치며 번개가 때리므로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로 그는 병이 들어 눕게 되었으므로 아마 암신의 추구를 받은 것이라 생각하여 사죄하는 동시에 흠을 입은 곳을 시멘트로 때워 복원을 하여 두었다 한다. 이 농바위가 있는 곳을 농바우골이라 하며 농바우 밑에는 가마같이 생겼다는 가매바우가 있다.
가매바우
- 농바우 아래에 있는 바위인데 흔히 가마같이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가매라하는 말은 신 또는 왕을 뜻하는 「ㄱㆍㅁ」으로서 이는 「ㄱㆍㅁ·검·금·곰」등으로 호전하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가매바우는 <바우>로서 이는 신암이란 뜻을 가진 것이다. 이 가매바우에서 암석신앙의 그 일단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금강산
태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