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활에 바퀴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부터였지만 자전거와 같이 보행을 돕는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이다.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뜨 드 시브락이 만든 셀레리페르(Celerifere,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란 의미)는 같은 크기인 두 개의 나무 바퀴를 나무로 연결하고 간단한 안장을 얹은 엉성한 탈것이었다.
셀레리페르(Celerifere)
1817년 등장한 드라이지네는 앞바퀴를 움직일 수 있는 최초의 탈것이었다.
1817년 독일에서 카를 폰 드리이스는 앞바퀴를 움직여서 원하는 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 목제 두 바퀴 자전거를 만들어 다음에 파리에서 드라이지네(Draisine)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량되어 호비호스(Hobby horse), 댄디호스(Dandy horse)라는 이름을 얻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모두 발로 땅을 차서 움직이는 것으로 능숙한 이들이 겨우 10km 정도의 속도만 낼 수 있었을 뿐 실용성과 오락성 부분에서는 기대에 못 미쳐 대중적으로 보급되지는 못했다.
자전거는 193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대장간을 하던 커크패트릭 맥밀런의 고안으로 큰 진전을 보게 된다. 그는 좌우 2개의 페달을 밟아서 연결봉과 크랭크를 통해 뒷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를 만들어냈다. 증기기관차의 피스톤을 움직이면 컨로드와 크랭크를 통해 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드디어 사람이 땅에서 발을 뗀 채로 굴러가는 자전거가 태어난 것이다.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는 1861년 파리에서 대장간일을 하면서 마차도 만들던 페이르 미쇼와 그의 아들이 내놓았다. 앞바퀴에 페달을 단 미쇼의 나무 자전거 벨로시페드(Velociped)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이 되었고, 당시 달리기 쉬운 탈것으로서 크게 환영받았다. 또한 1861년 2대, 62년 142대에 이어 65년에는 400대가 팔려 대량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앞바퀴에 페달을 단 벨로시패드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이 되었다.
체인과 브레이크가 달린 오디너리
세이프티는 앞뒤 바퀴의 크기가 같고 체인구동 방식 사용. 사진은 1894년 등장한 대나무 자전거, 무게를 줄이기 위해 프레임과 포크, 핸들바 등에 대나무 사용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바퀴 둘레에 철판이 씌어졌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라이더에게 너무 심하게 전달되어 본쉐이커(Bone sh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바퀴에 통고무를 쓰면서 승차감이 좋아진 것은 물론 속도도 빨라졌다. 1860년대 후반에는 이 모델을 이용한 첫 레이스가 열렸고, 첫 번째 자전거 쇼도 파리에서 열려 앞선 기술들이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미쇼의 자전거로 스피드를 추구하게 된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Big wheel) 또는 오디너리(Ordinary)로 불리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굴림바퀴의 지름을 크게 하면 같은 한 바퀴 회전이라도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타이어는 역시 통고무를 써 빠르고 승차감이 좋으며 스타일도 멋있는 자전거였다. 오디너리는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크게 환영받아서 자전거 경주를 큰 인기 스포츠로 끌어올렸다.
빅휠, 오디너리의 약점은 안장이 너무 높아 타고 내리기 힘들고, 앞바퀴가 장애물에 걸리면 탄 사람이 앞으로 곤두박질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결점을 없애면서 새로 나타난 것이 세이프티(Safety 또는 Safety bicycle)다.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슨은 같은 사이즈의 크지 않은 바퀴를 달고, 앞바퀴 페달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있는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요즘의 자전거와 비슷한 세이프티를 처음 내놓았다. 안장에 오르내리기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도 않은 안전한 자전거라는 뜻이다. 1885년, 오디너리를 만든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인 존 스탈리는 세이프티 프레임을 다이아몬드형에 가깝게 하는 등 구조와 메커니즘에서 요즘 자전거의 기본요소를 모두 갖춘 로버(Rover) 자전거를 선보였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량되어 호비호스(Hobby horse), 댄디호스(Dandy horse)라는 이름을 얻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모두 발로 땅을 차서 움직이는 것으로 능숙한 이들이 겨우 10km 정도의 속도만 낼 수 있었을 뿐 실용성과 오락성 부분에서는 기대에 못 미쳐 대중적으로 보급되지는 못했다.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1860년대부터 자전거는 빠른 발전을 거듭한다. 그 중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가 이 흐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1860년대에 나온 미쇼의 앞바퀴 페달 구동방식 자전거로 시작된 자전거 레이스는 더 빨리 달리는 튼튼한 모델을 만들려는 메이커와 레이서들의 노력으로 70년대에는 오디너리, 80년대에는 체인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세이프티의 등장을 재촉했다. 통고무 타이어에 이어 1888년에 나온 공기타이어 덕에 자전거는 스피드를 더하면서 누구나 탈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탈것이 되었다.
1859년 파리-루앙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포즈를 취했다. 맨 왼쪽이 이 경기에서 우승한 '제임스 무어'
197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 오디너리가 보급되면서 수많은 애호가 클럽이 생겨났다.
자전거 클럽 홍보를 위해 각종 포스터도 등장했다.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1860년대부터 자전거는 빠른 발전을 거듭한다. 그 중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가 이 흐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1860년대에 나온 미쇼의 앞바퀴 페달 구동방식 자전거로 시작된 자전거 레이스는 더 빨리 달리는 튼튼한 모델을 만들려는 메이커와 레이서들의 노력으로 70년대에는 오디너리, 80년대에는 체인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세이프티의 등장을 재촉했다. 통고무 타이어에 이어 1888년에 나온 공기타이어 덕에 자전거는 스피드를 더하면서 누구나 탈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탈것이 되었다.
파리와 런던에서 벨로시페드와 본쉐이커 등 미쇼의 자전거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자 몇 해 뒤 레이스가 벌어졌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 레이스는 그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1868년 5월 31일, 파리 서쪽 교외에 있는 생클로 공원에서 열린 경기가 유일한 문서 기록이 있어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1200m를 달리는 이 레이스에는 벨로시페드 10대가 출전했다. 미쇼와 가까운 영국인 제임스 무어가 미쇼의 자전거를 타고 우승했으며, 기록은 3분50초로 시속 약 10km의 속도였다.
레이스가 많은 관객을 모으면서 큰 인기를 끌자 프랑스의 스포츠 신문과 자전거 신문들이 다투어 레이스를 열었다. 이런 유행은 영국으로도 옮겨와 1869년 파리와 런던에는 자전거 레이스용 트랙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자전거 경기는 곧 장거리 로드 레이스로 발전했다. 1869년 11월 9일, 파리-루앙 123km 레이스가 기획되어 300여명이 출전신청을 했다. 미쇼자전거회사가 우승상금 1000프랑을 내건 세계 최초의 내구 레이스는 경기 당일 비가 내렸지만 출발점인 개선문 앞에는 100여대가 모였다. 벨로시페드 외에 세 바퀴 모델인 트라이시클, 네바퀴차도 몇 대 나왔고 여성도 4명이나 출전했다.
비에 젖은 비포장 자갈길을 달린 경기에서 제임스 무어는 123km를 10시간40분에 완주해 평균 시속 11km가 넘는 기록을 세우며 또 다시 우승했다. 그는 미쇼가 아닌 다른 벨로시페드로 출전했으며, 유일하게 통고무 타이어를 썼다. 완주한 자전거는 모두 30대였으며 그 중에는 여성도 한 명 있었다.
이 무렵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자전거클럽들이 생겨났고, 각 클럽에서는 저마다 레이스를 기획했다. 그러나 1870년 7월 프랑스가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고 여기서 패전하자 자전거 만들기와 레이스 개최 등의 중심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1871년 영국에서 제임스 스탈리가 오디너리라는 새 자전거를 내놓고 1885년 그의 조카 존 스탈리가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안전한 자전거 세이프티를 내놓아 영국의 우위는 더욱 굳어졌다.
1870년대 후반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 오디너리가 보급되면서 수많은 애호가 클럽이 생기며 레이스 열기가 더욱 높아졌다. 가볍고 튼튼한 오디너리로 스피드가 좋아져서 제임스 무어는 1873년 1시간에 23.3km를 달렸고, 이 기록은 차례로 높아졌다. 레이스는 1마일, 5마일, 25마일, 50마일 등의 종목이 있었고 1시간, 24시간 등으로도 구분되었다. 나라마다 챔피언을 뽑고 유럽과 미국의 챔피언들이 겨루는 세계챔피언 레이스도 벌어졌다. 이와 함께 국경까지 넘는 인터시티(intercity) 레이스도 많은 관객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레이스의 기획·진행을 위한 각국의 자전거 관련 단체들이 생겨 국제사이클연맹(UCI)에 이르는 길도 닦았다. 영국에서는 로드 레이스에 따르는 국민들의 항의로 1890년 로드 레이스를 법으로 금지해서 그 뒤 자전거 레이스의 주도권은 유럽대륙과 미국으로 다시 넘어갔다.
오디너리와 뒤이어 나온 세이프티의 앞선 성능과 공기타이어의 등장으로 장거리 로드 레이스들이 성공했으나 가장 자주 벌어져 많은 관객을 모으면서 떠들썩하게 진행된 것은 실내 레이스였다.
많은 실내 레이스 중 큰 인기를 누린 것은 1870년대 말 영국에서 시작된 6일 레이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탄 것이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레이스였다. 1891년 시작되어 해마다 한차례 열린 이 경기는 91년과 92년은 오디너리만 나왔으나 93년부터는 공기타이어를 쓴 세이프티들이 스피드를 겨루었다. 일요일 자정(월요일 오전 0시)에 스타트해서 토요일 밤 10시까지 꼬박 142시간 동안 계속되는 고된 6일 레이스는 98년까지 열렸고 나중에는 세계챔피언전으로 확대되어 미국과 유럽의 이름난 레이서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엿새 동안 잠깐만 눈을 붙이고 음식도 달리면서 먹는 이 죽음의 레이스는 레이서들이 기진맥진한 꼴로 달리게 되는 후반부, 특히 마지막 날이 대인기였다. 엿새 동안 2000마일(약 3200km)까지 달린 매디슨 스퀘어 가든 6일 레이스는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에 밀려 1899년부터 금지되었으나 2명이 한 팀으로 달리는 6일 레이스로 규정을 바꾸고 계속되었다.
세이프티 자전거는 1888년에 나온 공기타이어와 힘을 더해 1890년대를 자전거 전성기로 만들면서 자전거 레이스의 기틀을 잡게 했다. 미국에서는 자전거 레이스가 프로야구에 맞먹는 스포츠로 많은 관람객을 열광시켰다.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신문사와 메이커들이 자전거 레이스를 기획하고 지원하면서 프로 레이서들을 키웠다. 이 같은 열기 덕에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에 자전거 레이스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1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는 MTB도 추가), 1903년에는 프랑스 국토를 일주하는 뚜르 드 프랑스가 열려 연례행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도입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 대략 도입은 선교사나 개화파에 의해서 개화기, 경기는 일본인들의 영향으로 대한제국시절부터 시작되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초창기 경기는 서울의 자전거 상인들이 자전거를 보급하기 위해서 상금을 걸고 개최한 대회였다. 1906년 4월22일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서쪽 훈련원에서 열린 제1회 대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엄복동 선수가 탔다는 로지휘트워스 자전거.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본격적인 대회로 발전된 것은 1913년 이후다. 20년대부터 우리나라와 일본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에 참가했으며, 이때 우리선수들은 민족정신을 크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특히 엄복동은 20년대에 일본선수들을 물리치고 많은 우승을 차지해 한민족의 의기를 북돋는 주역이 되었다.
22년 5월에는 전국자전거대회가 열렸고, 해방 후 46년 4월 대한자전거경기연맹이 발족되었으며, 47년에는 세계사이클연맹(UCI)에 가입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세계대회에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대회다.
현재 개최되는 사이클 경기의 맥은 6.25동란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자전거에서 사이클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절의 경기는 주로 신문사에서 주최했고, 대회는 3.1절, 8.15, 4.19 등을 기념하기 위해 그런 날에 열렸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울분들을 표했던 일제시대가 사이클경기의 최고 인기 절정시기였다면 해방과 정부수립 이후에는 대통령의 스케줄에 맞춰 도로 경기가 출발하고, 행차 중에 사이클 행렬을 목격한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경기행렬에 대해 박수를 보내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영부인의 저격사건으로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져 헌병들이 한강대교를 막고 모든 차량들의 통행을 통제하던 상황에서도 사이클경기 행렬에는 통제는커녕 바리케이드를 치우며 원활한 진행을 지원하던 70년대까지 국내 자전거 경기의 인기는 그 어떤 종목보다 최고였다.
19세기 말까지 큰 발전과 많은 인기를 끌던 자전거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그 위세를 잃고 답보상태에 빠졌다. 로드바이크 역시 지난 120년 동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진보는 하지 못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럽에서 열풍처럼 번진 레이스의 인기에 힘입어 프레임 제작기술은 물론 소재와 각종 부품의 발전을 이뤘다. 이탈리아의 캄파놀로와 일본의 시마노는 각종 첨단기술을 선보이며 부품업체의 선구자로 나섰다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특히 19세기 사람과 동물, 물과 바람의 힘을 대신하는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의 발명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과학의 발전, 물질적 풍요로움까지 가져왔다. 그러나 자전거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프레임과 부품의 소재가 보다 강성이 높은 것으로 바뀌고 일부 부품의 성능과 가공기술이 좋아진 것을 제외하고 기본 구조가 거의 그대로일 정도로 그 진화가 미미했다.
19세기 말까지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면서 큰 발전과 많은 인기를 끌던 자전거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위세를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1886년에 등장한 휘발유 자동차 때문이다. 자동차는 힘들게 페달을 밟아야 움직이는 자전거에 비해 힘이 전혀 들지 않고 더 쉽고 빠르게 달릴 수 있어 유럽과 미국 상류층의 관심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런 주요 소비층의 무관심은 세이프티에 던롭이 개발한 공기타이어를 사용하는 등 당시 빠르게 흐르던 발전의 물결을 한순간 멎게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색다른 새 기술의 등장을 보지 못한 자전거는 20세기에 기어 단수의 증가와 브레이크, 변속기 등을 비롯한 부품의 개량, 새로운 소재 이용, 제작기술의 진보만을 보여 왔다. 전 세계적으로 보유대수는 계속 늘어갔지만 자전거의 이 같은 답보상태는 197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속에서 새로운 타입의 자전거인 마운틴바이크(MTB)가 등장해 활용범위가 혁명적으로 확대될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로드바이크 역시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진보는 하지 못 했다. 자전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의 경우 1884년 최초로 등장한 다이아몬드형 구조인 세이프티의 디자인을 12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그 구조가 당시나 지금이나 물리학적으로 가장 튼튼하고 안정감이 높은 이유도 있다.
현대적인 자전거의 시조로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에 던롭의 공기주입식 튜브타이어를 썼다. 브레이크는 타이어를 위해서 누르는 방식이다.
당연히 그 동안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앞뒤 바퀴의 크기를 다르게 만드는 등 자전거 역사에서 '색다른 모델'로 다뤄지는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도전들은 당시 관심만 끌었을 뿐 대세가 되지는 못 했고, 그 인기하락과 함께 결국 자전거는 다른 것에 비해 더 보수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은 19세기 말의 제작기술에 비해 조금 복잡한 디자인이었다. 당시에는 오디너리처럼 일자형 프레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차체의 디자인이 다이아몬드형으로 바뀌게 된 것은 체인과 기어 등의 구동장치 사용과 보다 안정감 높은 자전거를 만들기 위한 노력 때문이었다.
1885년에 선보인 익스프레스 세이프티(Express Safety, 영국)는 최초로 체인을 사용한 모델이다. 앞바퀴가 크고 뒷바퀴가 작은 오디너리였지만 구동축인 앞바퀴에 체인링과 스프라켓을 달아 기어비 차이를 이용해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이어서 1888년 등장한 포니 스타(Pony Star, 미국)는 오디너리를 개량해 보다 안정성 있게 만든 모델이다. 오디너리는 속도가 빠르지만 무게 중심이 높고 앞쪽에 치우쳐 있어 노면상태가 조금만 나빠도 넘어지기 쉬운 단점이 있었다. 포니 스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앞뒤 바퀴의 크기를 오디너리와 반대로 바꾸고 구동축과 안장의 위치도 뒤쪽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프레임의 디자인도 바뀌었는데 현재까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초기 형태를 이루었다.
다이아몬드형 프레임과 경쟁을 벌인 모델로는 십자형(cross) 디자인이 있다. 두 바퀴를 잇는 튜브와 이를 가로지르는 시트튜브 등으로 이루어진 프레임은 요즘 나오는 접이식 모델과 비슷한 형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강기술이 크게 발전해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이 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져 크로스형은 일반 자전거에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1989년 이탈리아 콜나고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카본 모노노크 프레임 C35
소재의 경우 부품과 함께 많은 발전이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무게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점점 가볍고 튼튼한 소재가 도입되고 속도와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도 조금씩 개선되었다. 알루미늄, 티타늄, 마그네슘, 플라스틱, 카본 등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면서 그에 따른 제작기술이 좋아지고 혁신적인 디자인도 나왔다. 따라서 성능은 물론 품질도 크게 좋아지고 대량생산으로 값도 많이 싸졌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부수적으로 자전거도 혜택을 입은 것일 뿐 순수하게 자전거만을 위한 개발은 아니었다.
처음 나무에서 시작한 자전거는 철의 사용으로 크게 진보한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합금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프레임은 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진다. 이에 따라 기어와 브레이크, 페달 등을 비롯해 동력전달장치까지 성능과 품질도 크게 개선되었다.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 이전에 이미 알루미늄합금이 자전거에 쓰이기 시작했고, 티타늄과 마그네슘을 거쳐 2차 대전 뒤에는 플라스틱을 활용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항공우주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사용하는 탄소섬유(carbon fiber)로 만든 프레임도 등장했다.
자전거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부품이다. 20세기 초 튼튼한 다이아몬드형 프레임과 편리한 뒷바퀴 체인 드라이브의 사용으로 자전거의 기본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세이프티는 체인이 옷을 감거나 더럽히고 흙탕물이 튀면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따라서 체인과 체인링 부분을 가리는 체인가드가 개발되었고, 체인 대신 드라이브 샤프트를 사용하는 구동장치도 등장했다.
드라이브 샤프트를 사용하는 모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00년에 나온 피어스(Pierce, 미국)다. 페달을 밟는 힘이 톱니바퀴를 통해 드라이브 샤프트를 돌리고, 이 샤프트가 다시 톱니바퀴로 뒷바퀴를 구르게 했다. 그러나 체인방식에 비해 무겁고 유지·보수가 까다로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자전거 부품 중에서 20세기에 가장 큰 발전을 보인 것은 바로 정교하고 튼튼한 변속기와 기어 단수의 증가다. 더 빠른 속도를 내고 언덕을 보다 쉽게 오를 수 있는 기어는 1870년대 3개의 바퀴를 쓰는 트라이시클에 먼저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1890년대에 세이프티를 위한 4단 기어와 3단 디레일러에 관한 특허가 나왔다. 또한 이 무렵에 2단 기어를 단 자전거도 등장했으나 실험하는 수준이었다. 1902년에 나온 롤리(Rollie, 영국)와 더슬리 피터슨(Dursley Pedersen, 영국)은 모두 3단 기어를 달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1908년 지금의 디레일러형의 기어를 쓴 자전거가 첫 선을 보였고, 그 뒤는 새로운 금속소재를 쓰고 제작기술이 정교해져 오늘날의 다단기어로까지 발전과 보급이 이어졌다.
브레이크도 처음에는 타이어를 긁거나 프리휠 없이 페달을 거꾸로 밟아 제동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타이어를 망가뜨리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바퀴의 림을 잡아 바퀴 회전을 멈추게 하는 형식으로 개량되어 19세기 말에 림 브레이크로 통일되었고 20세기에 크게 개량되었다.
자전거의 성능과 품질(내구성)이 좋아지면서 주목받은 것이 레이스다. 여러 도시를 오가며 스피드와 내구성을 겨루던 유럽의 자전거 경주는 1903년 프랑스 전국을 도는 뚜르 드 프랑스로 발전해 지금까지 100년 넘게 변함없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어서 1909년에 시작된 지로 데 이탈리아도 뚜르 드 프랑스 다음 가는 투어링 대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열풍처럼 번진 레이스의 인기는 프레임 제작기술은 물론 소재와 각종 부품의 발전도 가속시켰다. 더 빠르고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변속과 제동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유럽 메이커들은 달리는 실험실이자 움직이는 광고탑 역할을 해오던 각종 대회를 위해 기술개발에 더 큰 박차를 가했다.
프레임 제작기술은 로드바이크 레이스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20세기 초반부터 꾸준하게 발전했다. 다이아몬형 디자인은 가장 튼튼하면서도 안정성 높은 구조로 인정받아 큰 변함없이 계속해서 로드바이크에 쓰였다. 그러나 다른 형태보다 더 많은 튜브를 사용해 무거울 뿐 아니라 각 파이프를 정교하게 잇기 위해서는 고난이도의 제작기술도 필요했다. 결국 이런 문제는 파이프 제작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되었다. 강관기술의 발달로 제강업체는 보다 두께가 얇은 파이프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자전거도 이 혜택을 받아 보다 가벼운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알루미늄합금과 티타늄, 카본 등 새로운 소재의 사용과 함께 새로운 가공기술도 개발되었다. 파이프의 일정 부분의 두께를 얇게 만들어 무게를 줄이는 버티드 가공기술이 발명된 후 더블 버티드, 트리플 버티드까지 등장했고, 얇은 두께의 튜브를 쓰는 대신 단면의 지름을 두껍게 해서 강도를 보강하는 오버사이즈 튜브도 만들어졌다.
프레임을 제작할 때 각각의 튜브와 스테이를 연결하는 방법으로는 러그(lug)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이 방식은 지금도 크롬몰리 프레임 제작에 쓰이는 것으로 튜브와 튜브를 러그라고 불리는 이음쇠로 연결하며, 러그와 프레임은 황동 등의 금속을 녹여 고정시킨다. 크롬몰리의 경우 고열로 용접할 경우 크랙(crack, 틈)이 생기고 금속의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낮은 온도로 제작하는 러그를 많이 쓴다. 그러나 합금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열에도 변형이 적은 크롬몰리 소재도 나와 각 튜브를 용접해 만드는 제품도 있다. 물론 알루미늄과 티타늄 프레임의 경우 아르곤 용접을 이용해 튜브끼리 맞대어 용접한다.
신소재의 등장에 따라 디자인 역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알루미늄과 카본의 경우 크롬몰리에 비해 가공성이 좋아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기저항을 줄여주는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이 항공우주와 자동차에 이어 자전거 분야에도 시도되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프레임의 경우 크롬몰리와 마찬가지로 가공된 튜브를 용접해 만들기 때문에 다운튜브와 시트튜브, 포크 정도가 공기저항을 덜 받게 얇은 형태로 바뀌었다. 반면 카본 차체의 경우 틀에 카본 섬유를 덧대고 경화제를 발라 굳히는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프레임 전체를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카본은 가볍고 단단하면서 충격흡수력이 좋은 장점 외에도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 가장 좋아 지금도 최고급 모델은 물론 대부분의 타임트라이얼 모델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레이스는 각종 부품의 발전을 가져온 가장 큰 공신이었다. 특히 변속기와 기어 등 구동부품은 더 빠른 속도를 내고 언덕을 쉽게 오르기 위한 필수품이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업그레이드되었다.
19세기 말 2단으로 등장한 다단 기어는 이후 3, 4단을 거쳐 6~10단까지 개발되었다. 다단 기어의 사용으로 디레일러(derailleur, 변속기)도 나왔는데, 초창기 2, 3단용 모델은 한 개 또는 두 개의 긴 막대로 체인의 위치와 길이를 조절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변속기는 작동성은 물론 정확성도 매우 떨어져 노면과 페달링 충격에도 기어가 변속되거나 체인이 빠지며, 라이더가 달리면서 두 개의 레버를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볼트와 너트 대신 손으로 허브를 쉽게 조이고 풀 수 있는 퀵릴리스를 개발한 이탈리아의 캄파놀로는 시트스테이에 두 개의 레버를 단 로드(rod) 기어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이전에 따로 떨어져 있던 두 개의 레버를 한곳으로 모아 작동 편의성을 높였고 정확성도 높아졌다.
1908년에는 지금의 변속기와 비슷한 리어 디레일러가 등장했다. 풀리와 스프링을 사용해 고속기어를 사용할 때 체인이 늘어져 빠지는 것을 막았고, 작동레버를 케이블로 연결해 탑튜브나 다운튜브에서 손쉽게 조작할 수 있게 했다. 이후 각 메이커에서는 2단 체인링을 쓸 수 있는 앞 변속기도 속속 선보였다. 변속기 역시 보다 가볍고 튼튼하면서 내구성이 뛰어난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프레임에 이어 알루미늄, 티타늄, 카본 등의 신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제작기술 또한 정밀해져 무게와 크기가 크게 줄고 정확성도 좋아졌다. 변속 레버 역시 초기에는 투박한 막대모양이었지만 케이블을 사용하면서 레버형으로 바뀌었다. 탑튜브나 다운튜브에 달리는 이 변속 레버는 최근에도 저가형 모델에 쓰이지만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1986년 일본의 시마노가 선보인 인덱스(Index) 타입은 이런 단점을 개량한 것으로 한 단씩 기어를 업·다운 할 수 있어 정확한 변속이 가능하다.
케이블이 사용되면서 레버형 변속레버 등장
시미노가 선보인 SITIR방식의 컨트롤 베러
보다 편리하고 빠른 동작을 위해 변속 레버와 브레이크 레버들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많음
이후 시마노는 변속 레버와 브레이크 레버를 하나로 합쳐놓은 STI(System Total Integration) R 방식을 선보이면서 변속장치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한다. 이 시스템은 레버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 편할 뿐 아니라 브레이킹과 변속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이후 캄파놀로도 시마노에 이어 두 개의 레버가 하나로 통합된 에르고(Ergo) 시스템을 선보였고, 카본으로 만든 제품도 내놓았다.
크랭크세트는 보다 높은 힘 효율을 좋게 하기 위해 2, 3단 체인링을 사용하는 시도 외에도 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특히 크랭크세트의 경우 다리로부터 직접적으로 많은 힘을 받기 때문에 보다 튼튼해야 했다. 그러나 스틸로 만든 크랭크암은 튼튼하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 단점이었다. 따라서 자전거 분야에 신소재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크랭크암에도 알루미늄과 카본 등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 중 시마노와 캐논데일은 크랭크암의 속을 비게 해서 무게를 줄이는 할로우테크(Hollow Tech)와 할로우그램(Hollowgram) 기술을 개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클립리스 페달과 여기에 쓰이는 클릿(왼쪽부터)
사람의 힘이 가장 처음으로 전해지는 페달의 경우 보다 힘 효율을 좋게 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이미 토클립(toe-clip) 방식이 개발되었다. 토클립 페달은 페달에 신발을 페달에 고정시킬 수 있는 클립과 끈이 있어 페달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신발을 넣고 빼기 불편하고, 위급상황 때 발이 페달에서 빠지지 않아 심하게 다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나온 것이 클립리스(clipless) 페달이다. 이 제품은 신발 바닥에 클릿(cleat)이라는 쇠를 달아 페달과 신발을 고정시키며, 발을 빠르고 쉽게 뺄 수 있고 보다 안정적으로 페달에 발의 힘을 전달해 힘 효율이 더 좋다.
브레이크는 188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었지만 타이어를 마찰시키는 방식을 사용해 타이어가 빨리 닳거나 망가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등장한 것이 림 브레이크로 타이어 대신 림을 마찰시키는 방식이다. 로드바이크의 경우 트랙 경기에서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초기부터 지금까지 브레이크를 달지 않지만 도로 경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장치다.
클립리스 페달과 여기에 쓰이는 클릿(왼쪽부터)
로드바이크에 사용된 브레이크는 가운데에 회전축을 두고, 브레이크 옆쪽에 연결된 케이블이 브레이크 암을 잡아당겨 브레이크 패드가 림에 닿는 구조를 지닌 사이드 풀(side-pull) 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허브 내장형 모델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무게가 가벼워 레이스에 적합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초기 모델은 제동력이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후 2개의 회전축이 있는 듀얼 피봇(dual-pivot) 방식이 개발되어 성능이 보강되었다.
핸들바 역시 디자인이 변하고 새로운 소재가 사용되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 핸들바는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게 보다 낮은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모양이 바뀌었다. 플랫(plat) 형태에서 핸들바 양끝 손잡이 부분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완벽하게 굽은 드롭(drop)형태로 바뀌었다. 드롭 핸들바는 지금까지도 계속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으며, 소재는 스틸에서 알루미늄과 카본 등 보다 가벼운 소재로 바뀌었다
로드바이크
산악자전거(MTB)
로드바이크와 산악자전거는 겉모습에서부터 크게 차이가 난다.
로드바이크는 빠른 속도로 포장도로를 달리는 모델답게 얇은 전체적으로 날렵한 모습이다. 프레임은 가늘고 얇은 튜브로 만들어 공기저항이 적고 가볍다. 구동장치의 경우 앞 2~3단, 뒤 8~10단 기어를 쓰며, 빠른 속력을 낼 수 있게 기어비가 세팅되어 있다. 바퀴 역시 가벼우면서 최고의 접지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슬릭(slick) 타입이고, 낮은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드롭형 핸들바를 달고 있다. 산악자전거는 험한 지형을 달릴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내구성이 좋은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레임은 로드바이크에 비해 두꺼운 튜브를 사용해 튼튼하게 만들었다. 포크는 충격흡수를 할 수 있는 서스펜션 장치가 되어 있는 제품을 쓰며, 뒤 바퀴에 전달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프레임 뒤쪽에 서스펜션 장치가 달린 모델도 있다. 타이어는 흙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홈이 깊은 트레드(tread)와 넓은 접지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내구성과 충격흡수력이 높게 사이드월(side wall, 타이어의 옆면)이 두껍고 튼튼하다.
물론 림 역시 튼튼한 것을 사용한다. 핸들바는 조작이 쉬운 일자(一)형 플랫(flat) 타입이나 갈매기 날개 모양의 굽은 스타일의 라이즈(rise) 타입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