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조(1902. 6. 21 ~ 1971. 10. 16)

1919년 4월 4일, 5일 양일간의 병영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애국적 상무정신이 강했던 그는 일찍부터 항일의식을 길러오면서 비밀결사 병영청년회를 통하여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청년회원들은 병영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거사일을 4월 4일로 정한 뒤 태극기 등을 만들며 거사준비를 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경, 청년회원들과 함께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 모인 그는 학생들을 동원하고, 11월 40분경 태극기와 깃발을 앞세우며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에 일경의 탄압에 가해져 주동인물 몇몇이 피체되면서 시위군중은 일단 해산하였다. 검거망을 피한 이문조 등 청년회 간부들은 다음날 만세시위를 재개할 것을 결의하여 4월 5일 오후 3시경 1천여 군중이 가세한 가운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시위행렬을 선도하던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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