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수 (1911년 호적기재일은 1912.11.29. ~ 1972.2.10.)

고향을 알게 한 노래『타향살이』
도시가 공업화 되면서 지역 특성상 외지 사람들이 더 많은 울산은 그래서 '타향'이란 말의 체감도가 한결 더 높은 곳인지도 모른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 꼽아 헤어보니 /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타향살이』는 울산출신의 가수 고복수가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일제하이던 1912년 울산군 하상면 서리, 현 중구 병영동에서 출생한 고복수는 지금의 병영 초등학교인 옛 일신보통학교에서 4학년까지를 다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학교를 마치고 성장을 하였다.

1932년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한 그는 이듬해 오케이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타향살이』와 『사막의 한』이 인기를 누려 단번에 레코드 가수로 성공한 첫 케이스의 유명 인기가수가 되었다.

'세 동무(1928)', '사막의 한(1929)', '타향살이(1933)', '짝사랑(1937)'등 그의 노래는 지금도 불리지만 고향과 나라를 잃고 타향을 전전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타향살이'는 그야말로 동포의 가슴을 적시며 두고두고 고향을 돌아보고 눈물짓게 하던 노래였다.

1934년 가을, 가수생활 25년을 마감하는 은퇴공연을 하기까지 후배가수 양성에도 힘써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대학원'을 개설하여 이미자, 안정애 등의 인기가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향연 61세로 1972년 2월10일, 멀고 먼 타향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노래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그를 기려 『고복수 가요제(1987년 울산예총)』가 개최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1991년 10월 17일 제4회 고복수 가요제 때 '타향살이'노래비가 건립되어 울산시 중구 북정동 동헌 앞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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