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초 (1887. 12. 30 ~ 1919. 4. 5)

경남 울산(蔚山)사람이다.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下廂面兵營里)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그는 이곳의 비밀 청년회에 가입하여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중, 1919년 3월 서울에서 귀향한 한명조(韓命祚)와 이영호(李永浩)로부터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4월 4일 오전 9시경, 문성초(文星超) 등 청년회 회원들로 주축이 된 독립만세 시위군중은 병영국민학교에 모여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인근의 서리, 동리(東里), 남외리(南外里), 산전리(山田里) 등을 행진하며 시위운동을 벌였으나,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행사로 여러사람이 검거되고 해산하였다.

이에 다라 이문조(李文祚), 이종필(李鐘弼) 등의 동지와 함께 김세진(金世鎭)의 집으로 피신하여 이튿날 다시 거사하기로 계획하고 다른 동지들에게 연락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경, 다시 병영국민학교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인근지역을 시위행진하고 일제의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독립만세 시위군중이 1천여명에 이르러서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관헌은 급히 울산으로부터 13명의 군경을 증원받아 시위군중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결국 이문조등 9명이 13명의 군경을 증원받아 시위군중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결국 이문조등 9명이 일본 군경에 의해 체포되자 그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이들의 석방을 감행하였으며, 선두에서 활약하던 그는 다른 3명의 동지와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1991년에는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 : 한국독립운동사(문일사) 174 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 권206. 207. 20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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